Loading...
바오로회 2016-12-02T12:36:38+00:00

바오로회는 30~50대 형제 분들이 바쁜 사회생활로 본당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신부님의 뜻에 따라 바오로사도의 열정과 순명을 본받기 위해 2007년 9월부터 준비하여 2007년 11월 정식 발족된 모임입니다. 현재 30여명의 형제님들이 본당의 대소사에 미력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노력 중이며 월1회 신부님 지도하에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바오로회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평소 본당 활동을 하고 싶지만 바쁘시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여오신 형제님들은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같이 나눔도 같고 적당한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실 수 있게 도움도 드립니다.

  • 사순,부활행사
  • 어머니날 음식장만
  • 야외미사
  • 성지순례 또는 캠프
  • 봉사활동,모금활동
  • 성탄절행사

바 오로는 본래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정열적이고 다혈질적인 그의 성격은 유다교를 신봉하던 바리사이파 사람이었을 때나 사도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때나 남달리 적극적이고 철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내적으로 만나면서 그의 본성은 은총으로 정화되고 들어 높여져 전혀 다른 인간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동안 바오로가 그분을 직접 상봉했다는 역사적 흔적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은 그가 그리스도교와 첫 대면하던 장면을 예루살렘에서 스데파노의 순교의 때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도 7,54-8,1 참조). 그가 당시에 얼마나 광신적 유다교인이었으며 반 그리스도교적 박해자였는지 스스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습니다. 아니, 아예 없애버리려고 까지 하였습니다”(갈라 1, 13). 그의 박해 활동은 다마스커스까지 확장되어 갔습니다. 그가 그곳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일생 최대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체험한 것입니다. 그는 그 계기로 “그리스도께 사로잡힌”(필립 3, 12) 사람이 되면서 전혀 다른 인생관, 신앙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위로부터 내리친 어떤 위협적 위력, 번개처럼 그를 땅에 내동댕이친 그런 물리적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사랑, 형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의 발견이었습니다. 결국 박해자가 박해받는 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사랑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려 하면서(갈라 1, 18 참조) 만민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그는 세 차례의 선교 여행에서 온갖 곤경과 여러 차례의 죽음의 위기를 겪었으나 ‘이방인의 사도’라 불릴 만큼 성령의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오로는 하느님이 직접 부르신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직 소명의식에 언제나 철저했고, 실로 그 사명 수행에 혼신을 기울이며 일생을 바쳤습니다. 한편 그에 앞서 하느님은 그에게 요청되는 카리스마와 적성을 태워주셨고 또한 맞갖은 자질을 키워주셨습니다.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아니 하고 완성시킨다는 원리는 바오로 사도의 영성 여정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실로 은총은 그의 천부적 능력, 성향, 기질 그리고 감성을 희생시키지 아니 하면서 잘못된 부분은 지배하고 예속시키며 좋은 것은 고무하고 들어 높이어 발전시켰습니다. 바오로의 총체적 인간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천부적 재능, 기질과 함께 은총의 생활로 높여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혈질적이며 불같은 성격을 타고난 바오로가 유다교인였을 때 광신적 바리사이파 사람으로 활동한 것이 조금도 이상한 것일 수 없었듯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면서 이번에는 어떠한 역경이나 박해 그리고 죽음의 위협도 결코 그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고 외치는(로마 8, 35-39 참조) 열정적 사도가 된 것도 그의 성품다운 것이었습니다.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는 하느님은 빗나간 방향에서 저항하던 바오로의 본성적 재능과 기질을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은총의 선물로 전환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바오로는 우선 그러한 기질, 성품상 이방인의 사도로 적성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전진하는 성격이었으므로 보수적인 성향을 띤 예루살렘 모교회나 그 주변에 안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편 그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누구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그분을 내어주시는 ‘아버지’시라는 진리를 확신하였기에, 모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하느님, 빛의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필요성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교회의 건설(1고린 3,1-17 참조)과 공동 유익을 위해(1고린 12,7 참조)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1고린 12,11) 베풀어주시는 카리스마들 중 무엇보다도 복음 선포, 특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선포가 그의 몫임을 절감했던 것입니다(갈라 1,15-16 참조).

바오로가 숫한 역경과 시련 그리고 혹독한 박해 중에도 복음선포 사명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의 고백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

바오로는 다음과 같은 불가분의 두 진리를 사명 수행의 기본 척도로 삼았습니다. 하나는 그에게 선교사명을 맡기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다.”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다른 하나는 체험을 통한 그의 신념 고백에서 나타납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필립 4,13). 이것은 그가 주님의 일꾼으로서의 부당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는 이중적 자기의식이었습니다. 즉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오로가 기도와 사도직 활동 안에서 얻은 값진 체험의 결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오로의 사도직 영성의 기초이며 핵심이었습니다.

Load More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