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history 2017-06-17T22:25:04+00:00

1983년 약10개의 한인 성가정이 모여 『맥도날드』신부님께 영적지도를 해주실 것을 요청했다. 한국 공동체는 Blessed Sacrament 성당에서의 미사 때성가봉사를 함으로써, 미사를 활성화 시켰다. 이 때에 한인 공동체와 『맥도날드』신부님과의 유대관계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1984년 10월 16일에 오타와 대교구는 공식적으로 교회법 내에서 독립된 한인 천주교 공동체의 존재를 인정했다. 『맥도날드』신부, 『오도넬』신부 및 『페레라』신부가 한인 천주교 공동체의 영적지도를 해주셨고, 교구청과의 가교 역할을 해주셨다. 1987년 7월 13일, 한인 천주교 공동체는 국세청으로부터 자선 단체로 등록을 받았고,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자선단체 번호를 받게 되었다. 이 기간동안에, 한인 천주교 공동체를 도와준 분은 『페레라』신부, 『코커리』몽시뇰, 『라스론』신부, 『김기홍』신부 및 『람스덴』수녀를 들수있다.1995년 2월에 오타와 대교주는 한인 공동체를 공식적인 이름 “한국 성인 순교자 오타와 한인 천주 교회”로 명명하게 되었다. 김진형 요한 신부가 한인 천주교 공동체를 책임 맡게 되었다. 김진형 신부 때부터, 한인 공동체는 Blessed Sacrament 에 가서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중지 했다. 이 때부터, 한인 천주교 공동체는 한국말로 하는 미사를 원하게 되었다. 김 신부가 박사 과정을 하기 위해서 로마로 떠난후, 얼마동안의 방황끝에 『안토니오 오스탄』신부가 『로레인 리발』보좌 수녀와 함께 한인 공동체를 모아, 신부 기숙사인 Deschatelets 의 체육관에서 미사를 갖게 되었다. 그 때가 1996년 2월이었다. 체육관 시설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갖게 되어서, 『안토니오』신부는 Saint Paul 대학교의 성당으로 옮겨 미사를 집전했다. 1996년 11월 St. Theresa 성당의 『가해간』신부는 한인 공동체가 그 성당에서 미사를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이 때부터 한인 천주교 공동체는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안토니오』신부는 성경 공부반, 성모군단, 그리고 꾸르실로 운동 등의 여러가지 교회 활동을 하도록 권장 격려 해주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테살 5,11)

1999년 1월에 대주교는 『성 바오르』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있던 『안토니오 에기 구렌』 신부를 한인 천주교 공동체의 영적 봉사자로 임명했다. 『안토니오 에기 구렌』신부는 이미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한 바 있고, 한국 말을 할 줄 아시는 신부다. 1999년 후반기 때부터, 한인 천주교 공동체는 『오타와』의 하이텍에 취직 되어오는 새 이민 가족들로 급격히 성장하게 되었다. 인적인 이유, 사목적인 이유, 및 자산 재정립등의 이유로 인해 2001년 6월 23일 오타와 대교구는 Argyle 에 있는 Christ-Roi 교회를 한인 천주교 공동체에게 주기로 하고, 『한국 순교성인 천주교회』 로 명명했다.